성인 영어강사를 대상으로

2020년이 저문 지금, 이성은 감성이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 지나간 일이 더 마음에 남는 요즘이다.

1998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나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영어 교수법에 대해 강의하는 사람이 됐는가.

「영어 그림책에 눈을 뜨다」내가 「영어 그림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강의는, 확실히 2007년 3월-5월에 받은 조기 영어 전문가 과정.

강남의 김&존슨 영어교육센터에서 박종윤 선생으로부터 들었는데, 영어강사로서 10년째인데도 그림책의 신세계를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 때 만난 박정윤 선생님께 받은 가르침은 너무 귀해서 강사로서의 경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박종윤 선생님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스토리텔링은 전율이었어요~)

당시에는 김앤존슨과 제이 와이가 리터러시 교육센터의 양대 산맥이었는데.그해(2007년) 가을 구인광고가 나자마자 공부방 접고 제이와이 산본영어교육센터로 IN!
(상계동에서 산본역까지 1년 넘게 매일 출근하는 무모함이란!
)

그리고 배움에 목이 말라 제이와이 프로그램 교사과정(8회 또는 10회), 이현주 선생님의 피닉스 전문가과정(제와이. 제6회) 『미국 교과서 전문가 과정』(언어의 세계. 네 번 혹은 여섯 번 기억이 끊기면서 갈증을 풀어 갔다.

기울어져 가고 있던 제이와이 야마모토 교육 센터는, 내가 교수 부장을 맡은 09년 가을, 신형 인플루엔자 사태를 받아 10년 2월에 폐원.9월에 교수부장이 됐지만 두달도 안돼서 폐원을 결정했어.센터장이 없어 사실상 헤드포스트.

비록 교수부장이라지만 끝내 정규직으로 계약을 갱신하지 못해 이 일을 한 23년간 가장 마음고생을 했다.

하지만 끝까지 잘하고 싶어 강남센터의 요청에 응해 6개월간 수업을 더 하고 퇴근.(나는 바보다.

그 대우를 받고도…)

그 후 제이 와이는 아픈 기억이 많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곳이 됐고 어딘가에 소속돼 열정을 쏟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

JWAY에 관한 뒷이야기를 이렇게 얘기하는 데에도 10년이 걸렸네.

하지만 이 경험으로 마음은 더 튼튼해졌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기회를 준다는 순진한 생각은 다시는 하지 않았으니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고마운 경험인 것 같다.

제이와이 강남영어교육센터에서 2010년 8월

‘성인을 위한 영어강사로서의 첫걸음’ 나의 첫 영어지도사 강의는 안양 YWCA에서 2009년 5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진행된 ‘어린이 영어지도자 과정의 기본 및 심화과정’이다.

2시간 수업을 위해 12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힘든 강의였지만 정말 모든 열정을 쏟았던 뜨거웠던 시간.

당시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강사료보다 훨씬 적은 시간당 25,000원으로 강의 제의가 들어왔는데 강사료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강의였다.

강사료도 정말 중요하지만 도전은 더 중요하다!

2009년 안양영어지도사 수료식

그리고 2010년 9월 선샤인 리더스 가이드북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출판사 세미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20회까지 일일이 세고 나서 세는 일은 그만뒀으니 전국 방방곡곡을 열심히 달렸다.

처음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때는 많이 긴장되기도 했다.

친구들을 관중 사이에 앉히고 그들만 보고 수업을 했다고 한다.

아래는 바로 그 영상

마이크를 처음 사용하던 날이었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엔지니어가 다가와서 “선생님 강의하실때 없으시면 마이크를 꺼주세요…” ㅜㅜ

https://ourteacher.blog.me 선샤인 리더스 활용 세미나 동영상입니다.

1. Reading 단계와 선샤인 리더스 2. 파닉스 학습과 선샤인… ourteacher. blog. me 201010 10 1

그리고 2013년 봄 YBMETA로부터 강의를 제의받았다.

YBMETA는 당시 모니카 선생님이 영어독서지도사, 파닉스 전문가, 유아영어지도사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수업에 대한 반응이 워낙 좋아 추가로 강사를 모집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같은 해 가을부터 이듬해 2014년 말까지 YBM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어미술지도사 과정은 강남에서, 영어독서지도자와 파닉스 전문가 과정은 부산에서 강의했다.

강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니카 선생님의 영독사나 파닉스 과정을 수강해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모든 것을 듣지 않고 시작 부분만 수강한 것으로 기억한다.

도서관 강의를 시작하다.

그러나 급히 2014년 12월 YBMETA는 문을 닫게 됐는데 수강생들이 폐원 소식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스토리텔링을 신청하려는데 벌써 YBM ETA 문 닫았대요!
”12월에 폐점하는데, 12월에 알게되다니!
!
강사에게 먼저 가르쳐줘…ㅜㅜ 역시 회사는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또 경험!

계약사항에 걸려 다른 출판사에서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는 바람에 갑자기 강의가 제로된 1월, 그때부터 집 근처 도서관 홈페이지에 매일 들어가 강사 공개 모집란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2015년 1월과 2월 사이에 강사 모집 공고가 난 분당, 용인, 안양, 과천, 의왕, 군포의 모든 도서관에 이력서와 강의 제안서를 배포하는 작업 끝에 안양, 어머니, 용인, 영어도서관에서 3월 개설된 호계군포구의왕, 군포의 모든 도서관에 이력서와 강의 제안서를 배포하는 작업 끝.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을 기억해둬!

그 후 도서관 수업을 계속 하고 있어서 혹시 준비할 틈도 없이 급하게 쫓겨났습니다.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다시 YBMETA> YBMETA 폐원 후 대표강사였던 모니카 선생님은 모니카 영어연구소를 열고 2015년 2월 초부터 영독사, 파닉스, 유아 영어강사 과정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나는 3월부터 도서관 3곳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클래식 리더스 60권의 가이드 북을 쓰면서, 다시 바쁜 생활을 시작했는데…

3월 말 YBM 커리어캠퍼스(평생교육원)로부터 갑작스러운 미팅 요청을 받았다.

영독사, 파닉스, 스토리텔링, 영어미술 등 영어지도사 과정을 열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들어오는 것을 거절한 적이 없는 나는 다시 YBM으로 IN!

미팅을 마치고 나오자 모니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제안을 받았다며 축하를 받았다.

개강 기념으로 YBM 측에서 12만원을 주고 3개의 영독사 강의를 동시에 여는 바람에 도서관 수업과 가이드북 집필 등 업무까지 겹쳐 죽을 정도로 힘들었던 2015년 5월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전에는 도서관 수업 등이 있어 평일 저녁과 주말에 강의를 했지만 평일 오전 수업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모니카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내가 있는 곳은 장르> YBM에 다시 들어갔으니 큰 회사의 그늘에서 강의하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제와이 영어교육센터의 폐원, YBMETA의 폐원을 경험하고 회사는 수익성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문을 닫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내 이익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 수업은 최고다.

국가는 멸망하지 않으니까!
!
!
)

그래서 내 이름을 걸고 강의를 열겠다고 굳게 결심했고 온오프믹스라는 강의 플랫폼으로 2015년 11월부터 YBM 커리어 캠퍼스와 별도로 강의를 열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부터 시작된 원오프믹스 강의

당연히 찾아오는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YBM이라는 이름 없이도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개인 강의를 해왔다고 한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충청도 등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겪다 보니 수강생 입장에서 강의를 분석하는 눈이 생겼고 남의 주머니 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덧 “내 이름을 걸고 강의를 열 수 있고, 수강생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런 사람=나는 제이와이에게 한번도 정규직 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유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주기로 했는데 안 써줘서 그냥 나왔어.

저는 YBM 커리어캠퍼스 첫 면접에서도 왜 저에게 연락하셨나요? 나보다는 모니카 선생님에게 연락하지 그랬어요라고 물어 면접에 있던 YBM 직원 3명을 당황하게 만든, 남의 물건을 빼앗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내리고 싶고, 실수로 가져왔다면 다 돌려주고 싶어.

하지만 처음 오해를 받았을 때, 처음 억울했을 때 대응했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말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그리고 세상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가혹하다.

나에게 단 한 명의 스승은 없다 우선 내가 속한 이 정글은 한 스승 밑에서 쭉 자라기란 쉽지 않은 곳이다.

나는 이상한 영어로 방문 수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고 (이때 받은 교사 교육 역시 감동이었다) 삼성출판사에서 유치원 파견 교사로서 5년을 지냈고 (매월 지사 교육에 연 2회 1박 2일의 본사 교육에… 정말 많이 배웠다) 삼성출판사에서 유치원 파견 교사로서 유치원 파견 교사로서 5년을 맡았고 (매월 지사 교육에 본격 2년 반의 와이더 키즈북 2일 학원의 영어 학원에서 2년 반의 영어 영어 영어, 그리고 반을, 그리고 반으로, 그리고 영어, 그리고 반으로, 그리고 반을, 그리고 영어, 그리고 영어,

그리고 현재 성인들을 대상으로 영어지도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 중에 나만큼 여러 곳에서 오랜 현장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그만큼 속상해하며 달려갔으니까요.아무도 저 앞에 불을 들고 서 있지 않았으니까

<YBM 강사 양성과정> 시간과 함께 강의범위가 확대되어 강사 5명에게 60시간 동안 직접 강의기술을 가르치는 강사 양성과정을 2회 실시하게 되었다.

매일 강의 시연과 피드백으로 모두가 고생했지만 그만큼 모두 성장한 시간이다.

박명아 선생님, 박미정 선생님, 박은정 선생님, 강현 선생님, 이윤지 선생님, 송명성 선생님, 김가현 선생님, 이지연 선생님, 정지연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을 맺은 시간.

2016년 3월 지금은 나처럼 성인 대상 영어지도사 과정을 운영하며 날개를 펴고 있는 동료 선생님들이다.

이분들이 날개를 달아 더 높이 날기를, 그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기를, 쉬운 길에 너무 빨리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더 길게 쓰고 싶은데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 반이 걸리다니!
다른 사람들은 정말 길게 썼네.

2007년부터 10년 넘게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고 수많은 거절 끝에 결국 책을 낸 내 책 출간하기, 집념의 10년 이야기는 이번에 풀어야 한다.